무력함을 느낄때

사람이 살아가면서 삶을 주도하거나 주관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사람은 상황을 조절하거나 적응할 뿐이지 주도하거나 주관할 수 없다. 다만 자신의 영향력이 전체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조절 가능한 상활까지 끌고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온전히 주관하거나 주장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운명을 개쳑한다거나 주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신앙인으로서 사람이 인생을 주관할 수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은 무력한 존재라는 것이다. 종교를 가진 이들이 말하듯이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간다고 한다면 사람의 존재는 그 가운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마도 인간이 가진 존재의 한계성과 능력의 제한성을 두면서 사람은 결국 신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신적 존재의 영향력 아래에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무력함이란 내 힘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감정일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상황인 것이고 나의 힘과 능력이 지금의 상황을 개선할 수 없다는 느낌이 무력감이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이런 무력감은 어찌보면 매순간 다가온다.

우리는 내일을 모른다. 내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 수는 있지만 실제적인 내일의 상황이나 일들이 나의 통제하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을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그 일들을 진행하고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은혜이고 기적이다.

당장 내일 아침 내 호흡이 끊어져 나는 이곳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무력함은 또한 두려움으로 드러난다. 자신의 통제하에 두지 못하는 삶과 환경은 결국 두려움을 낳게 된다. 그런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움츠러들게 하고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절망감을 가져오게도 한다.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면만을 갖게 하지는 않는다. 두려움이란 결국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감정이기에 두려움이 가지는 본질적 방향성과 목적성을 찾을 수만 있으면 오히려 두려움은 우리를 더 나은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무력감과 두려움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의 부족으로 드러나게 된다. 나의 능력에 대해서 혹은 나의 환경에 대한 통제력의 상실이 무력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한다면 무력감과 두려움은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런 신뢰는 어떻게 회복될까? 그것은 나로부터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결국 신적 존재의 인정과 의지에 관한 것이다. 신이 존재하고 그 신이 나를 돌아본다는 신뢰감이 있다면 무력감과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신앙은 모든 것을 이기게 한다. 믿음은 결국 결과를 가져온다. 하지만 결과를 바라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에 결과가 일어남을 알아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내가 믿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갈망과 공부가 필요하다.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공부만이 아니라 나의 믿음의 대상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공부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그렇다고 이야기해 줘서 믿는 것이 아닌 내 자신이 알기에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새로운 영역으로 삶이 바뀌는 계기가 몇 개 생겨난다. 그래서 사실 두렵고 무력함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 내가 믿는 그 분을 알아가고자 한다.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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